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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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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이대로는 안된다!
작성일2013-11-06조회수439


  최근 몇 년 이래로 매장문화재 전문기관의 급증과 각종 건설 관련 민원의 증가로 건설관련 집단이 자신들의 민원을 해소하고자 나름 합리적인 대안을 강구한 것이 바로 입찰제도이다그리고 생존경쟁에 내몰린 일부 기관들이 택한 전략적 대안은 저가입찰덤핑수주다이게 현실이다.


  매년 위축되는 건설경기와 살아남으려는 기관 사이의 전쟁과도 같은 사투가 벌어지는 사이 발주처의 횡포 즉 요즘 말로 의 횡포에 그저 당할 수밖에 없는 ’ 또는 의 입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형세이다.


  과연 이것이 옳은 선택일까하는 생각에 이글을 쓰게 되었다사실 전문기관들의 이러한 선택에서 심각한 문제가 파생하게 되었고 이 여파가 각 개개 기관들의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고학계 전반에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문제로 불거져 가고 있다.


일단 무엇이 문제인가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첫째매장문화재에 대한 인식이다매장문화재는 국가 소유의 문화재라고 법에 되어 있다그런데 국가문화재를 발굴하는 것은 국가의 허가를 받아 민간 기관이 시행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국가문화재이면 시작부터 끝까지 국가가 관여할 대상으로 정책적인 목표 안에 있어야 한다관리가 되어야 한다그러나 이를 민간에 맡겨 두고 과 의 계약으로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시각에서 접근하면 그 순간 매장문화재에 대한 관리의 의미는 퇴색한다왜냐하면 누구도 관리하지 않는 사안에 과 이 적극적인 관리의 태도를 보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또한 발굴허가를 놓고 이상한 시각이 존재한다시도 출연기관은 시도와 결탁하거나 객관성 담보가 어려워 시도기관 발주 조사허가를 불허한다는 논리다그렇다면 기관의 사활을 놓고 수주경쟁에 뛰어든 사설 기관들은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말인가허가권자의 이러한 시각은 왜곡된 부분이 적지 않다과연 누가 더 국가문화재에 대한 관리 의욕이 더 클까?


  둘째조사 수주의 문제다조사의 질과는 상관없이 생존을 위해서는 저가라도 수주를 하여야 한다는 잘못된 시각을 가진 조사기관들이 아귀처럼 수주전쟁에 뛰어들고 있다더구나 조사 가로채기반값 수주영업 등 일반 영리 회사와 구분이 안가는 행태와 상식적인 도의는 아랑곳하지 않는 상황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이미 기관의 존재이유를 잃어버리고 있다비영리 공익업무를 대행하는 기관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다어떻게 하여야 할까?


  셋째무자격 조사의 문제이다원칙없는 조사허가라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전공자가 없는 기관에서 임시로 조사자를 데려와 조사허가를 받고 하는 모습에서 아예 발굴조사를 프로젝트별로 허가하는 상황이 곧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전공자를 고용하는 조사기관은 앞으로는 점점 더 사라질 것이다라는 예측을 하게 된다이제는 더 이상 고고학적 자료축적이라는 명분의 매장문화재 발굴조사가 아니라 건설현장의 건설업 정도로 위상이 전락했다는 자괴감을 지울 수가 없다그리고 기관책임자 또한 필요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넷째조사절차의 문제이다이미 지표조사따로시굴조사따로발굴조사 따로의 분리발주가 이루어진지 오래다가장 중요한 지표조사를 시행한 후 입찰을 통한 다른 기관이 시굴조사를 실시하고 또 입찰로 다른 기관이 발굴조사를 실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이러한 조사가 과연 일관되고 정확한 조사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이 과정에서 은 여러 기관에 가격을 문의하여 최소화된 가격을 기초가격으로 입찰에 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그 나마 각 기관이 혹시라도 수의계약이 이루어질까하는 기대감에 적정가 이하로 비용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아픈 이야기지만 그리고 스스로 손해를 보고 생채기를 낼 수 있는 문제이지만 이제는 누군가 꺼내야 정리가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렇게 소리내 본다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조사기관의 난립이다누구라 할 것 없이 조사 자체를 돈벌이라고 생각하는 지각없는 인사들이 아예 직업으로 인식하고 월급이나 자신의 경제적 가치를 지속하려고 회사로 만들어 이 업에 종사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생긴 문제라 더욱 개탄스럽다이 과정에서 소외당했던 젊은 조사원들은 이젠 중견 조사원이 되어 전철을 되풀이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이와 같은 문제가 지속되는 한 더 이상 매장문화재 발굴조사가 학문이라는 겉옷을 걸친 척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그저 개발을 위한 파괴행위라는 통과의례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개발의 꼭두각시로 전락하는 순간이다나 또한 이들의 일부일 수 있음에 자괴감이 크다이 문제들이 우리 스스로 자정되고 정리되지 않는다면 또다시 비극적인 사태가 오지 말란 법이 없을 것이다.


  여러 고고학계의 원로 선생님들과 선배 학형들 그리고 동학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013. 11. 6


최종모 올림


한문협 게시판

아직 전공을 택할지 안할지 아무것도 결정된게 없지만,
왠지 이 글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든다.

대외적으론 문화강국을 표방하면서 정작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 없다.

이번에 우연히 Warfare Archaeology님 블로그 방문해봤는데 이런 글을 보게되다니...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이것은 환경오염에 대한 자연의 경고인가?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충격적인 모습이네요.
직·간접적으로 농약을 접하게 되면 저렇게 되는건가...
아니 구체적으로 유전자변형(GM) 농작물이 문제인건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환경오염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좀 더 심사숙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실측] 과제가 주어진 이후로 쭉... 소중한 일상담

근처 박물관이란 박물관은 다 돌아다니면서 결국 활당된 과제를 완료했습니다.

기분이 좋군요. 호호

하지만 교수님께서 이를 어떻게 평가하실지가 문제...

사진은 차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뭐 대충 그려서 잘 그린 축에도 끼지도 않지만...

이상.

띠리링. [실측]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소중한 일상담

이번 학기 수업때 실측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이제 고고학이 뭔지 쬐~끔 감이 잡히는 1학년을 대상으로 실측과제라니... 이게 무슨 소리요 교수양반! 

게다가 양도 만만치 않아요. 각 시대별로 5개, 무려 50개에 달하는 실측도를 그려야 한다는...

뭐 기간이 한달 가까이(10/1)까지 남은 게 다행이지만, 다른 과목 과제도 줄줄히 나올테니 될 수 있음 빨리 끝내는게 좋을 듯 싶습니다.

생각해보니 이 정도 과제는 전공자들에겐 별것도 아니겠네요. 겨우 이 정도 과제로 징징거리다니...

... 어찌됬건 오늘도 근처 박물관에 가서 과제를 수행하러 갑니다.

이상.

간단히 정리한「중국고고학연표」 고고학

중국고고학연표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장

연도 / 고고학 관련 사건 / (주요 역사 사건)

BC 2세기 전한 시대에 정(鼎)이 출토되어 연호를 '원정(鼎)'으로 개원

11세기 북송의 여대림(呂大臨)고고도(考古圖)간행

18세기 청나라 시기 청동기와 금문 연구가 성행하였으며,『서청고감(西淸古鑑)』간행

1903 유악,철운장귀(鐵雲藏龜)출판

1911 나진옥 은허 조사 (신해혁명)

1921 안데르손, 주구점 유적 조사
        안데르손, 앙소문화 유적 발견

1927 동아고고학회 설립

1928 중앙연구원 어언연구소 은허 유적 발굴(~1937)

1929 배문중 등에 의해 북경인 두개골의 첫번째 발견

1930 중앙연구원 어언연구소 성자애 유적 발굴

1931 중앙연구원 어언연구소 후강 유적 발굴, 앙소문화 · 용산문화 · 은 문화 퇴적 확인 (만주사변)

1933 북평연구원 투계대 유적 조사.

1937 양저문화 발견 (중일전쟁)

1949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에 의해 고고학자는 대륙과 대만으로 분리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1950 중국과학원 고고연구소 성립.
        정주 상성 유적지 발견.

1954 반파유적 조사(~1957)

1958 대약진 운동

1960 이리두 유적지 발굴

1961신중국의 고고학간행

1965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조사와 연구 작업이 모두 중지.
        주요 잡지인 문물 고고 고고학보도 정간 (문화대혁명)

1972문물고고고고학보』복간

1976 모택동 사망

1977 왕성강 유적지 발굴

1978 개혁 개방 경제

1979 와점 유적지 발굴. 안지민,『삼십년 내 중국 신석기 시대 고고학』출간.

1981 소병기 · 은위장『고고학 문화 분계 유형 문제에 관하여』출간

1983 언사 상성 발굴

1995 송건, 이학근, 엄문명, 유위초, 석택종 등이 모여 하상주 단대 공정을 하기로 결정.

2000「하상주 연표」정식 공표

* 촐처: 웨난(Yue Nan), 2005, 『하상주 단대공정』, 일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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